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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들의 쇼핑몰 일러스트화한 이미지 |
장르와 서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한국 드라마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가운데, 《킬러들의 쇼핑몰》은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2024년 디즈니 플러스에서 독점 공개된 이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는 정교하게 연출된 액션과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이야기로, 단순한 액션물 그 이상을 보여준다. 총 8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충성심, 트라우마,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가장 일상적인 공간인 ‘쇼핑몰’을 배경으로 이질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수상한 유산, 그리고 드러나는 비밀
이야기의 중심에는 정지안이라는 젊은 여성이 있다. 김혜준이 연기한 이 인물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삼촌 정지만(이동휘 분)에게서 쇼핑몰을 상속받는다. 처음엔 단순한 법적 절차로 보였던 이 상속은 곧, 자신도 모르는 세계에 휘말리는 계기가 된다. 이 쇼핑몰은 일반적인 소매점이 아니라, 암살자들의 은신처이자 무기 거래의 중심지였던 것.
지안은 정체불명의 공격자들에게 끊임없이 쫓기며, 삼촌이 남긴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정지만의 이중적인 삶과 그와 얽힌 인물들의 과거를 하나씩 풀어간다.
액션 속에 숨겨진 감정의 무게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예상 가능한 전개’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액션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서사에 집중한 구성으로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회상과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 방식은, 정지만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과거에 어떤 킬러들을 훈련시켰는지, 그리고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특히 지안과 삼촌 사이의 관계는 이 드라마의 감정적 중심축이다. 말보다는 행동, 침묵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함이 이 둘의 관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폭력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서사는 오히려 잔잔하고 섬세하다.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시네마틱 연출
《킬러들의 쇼핑몰》은 시각적으로도 매우 뛰어나다. 대부분의 장면이 ‘한 건물 안’, 즉 쇼핑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지만, 카메라 구도, 조명, 편집 모두가 뛰어난 긴장감을 유지한다. 폐쇄적인 공간이 주는 답답함과 긴박함이 장르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액션 연출 역시 돋보인다. 과도한 편집이나 눈속임 없이, 한 장면 한 장면이 명확하게 전달되며, 시청자는 실제 싸움 속에 들어간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액션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전투 장면이 연출된다.
절제된 연기, 강한 인물
지안 역의 김혜준은 극도의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무기력한 청춘에서 생존을 위한 전사로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고 현실적이다. ‘센 여성 캐릭터’라는 진부한 틀을 벗어나, 진짜 사람 같은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 인상 깊다.
정지만을 연기한 이동휘는 그동안의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인물을 보여준다. 차갑고 계산적인 킬러이면서도, 조카를 향한 보호 본능과 후회를 동시에 품은 그의 연기는 매우 설득력 있다.
아쉬움은 있지만, 완성도는 뛰어나다
작품이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움은 존재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몇몇 조연들의 동기가 명확하지 않거나 급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다. 또한 열린 결말 방식은 시즌 2를 염두에 둔 듯하지만, 일부 시청자에게는 찝찝함을 남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러들의 쇼핑몰》은 디즈니+에서 선보인 가장 정제된 한국 콘텐츠 중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액션, 미스터리, 감정 서사의 균형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킬러들의 쇼핑몰》은 흔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슬픔, 트라우마, 도덕적 모호함 같은 무거운 주제를 오락성과 함께 풀어낸다. 기존 한국 액션물에 식상함을 느꼈던 사람들에게는 《마이 네임》이나 《빈센조》와는 또 다른 신선함을 제공한다.
이 작품은 디즈니+가 단순히 유행을 따르기보다,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청자를 고려한 연출, 한국적 감성을 유지한 서사, 그리고 장르의 재해석까지. 앞으로 디즈니+의 행보에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총평
《킬러들의 쇼핑몰》은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액션 드라마가 아니다. 그 안에는 깊은 인간 심리와 관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녹아 있다. 세련된 연출, 흡입력 있는 이야기,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어우러져 매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기존 K-드라마에 지루함을 느꼈던 시청자라면 꼭 한 번 시도해볼 만한 작품이다.
